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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짱 ㎫ 바다이야기무료체험 ㎫㎬ 75.rde254.top ┬[오길영 기자]
한국에서도 확인하는 극우의 세계적 확산은 기본적으로 자기와 다른 존재(성, 인종, 계급, 나이 등)에 대한 억압과 배제에 뿌리를 둔다. 왜 그렇게 된 걸까? 그것이 단지 악의나 편견의 문제일까? 거기에는 인류학적·진화론적 기원을 가진 생존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인류는 수십만 년 동안 혈연 중심의 수렵 채집 공동체 안에 살면서 집단 구성원은 신뢰할 수 있지만, 무리 밖 집단은 자원 경쟁, 질병 전파, 폭력의 위험을 불러올 수 있는 잠재적 위협으로 여겼다. 그렇다면 어떻게 안과 밖의 집단을 나누는가? 생존의 도구로서 편향된 인식이 작동한다. 생물학적, 문화적, 종교적으로 낯선 외모, 말, 행동 방식 등을 지닌 이방인(alien)에게 두려움이나 경계심을 느끼는 남양주별내지구분양가 경향은 진화 과정에서 생존 가능성을 높여준 심리적 반응이었다. 이런 본능적 반응이 편견, 차별, 배제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현대 사회는 다문화, 다인종, 성 다양성 등 복잡하고 유동적인 구조로 변화했다. 하지만 인류는 과거 생존 환경에 맞춰진 채 진화 속도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 결과 비이성적인 혐오, 배제, 농협대학정시등급 차별이 나타난다. 진화론적으로 내재화된 비이성적인 배제의 본능에 사로잡혀 살 것인가? 그것을 넘어선 감성적 공감과 이성적 이해로 나아갈 것인가? 문명과 야만을 나누는 기준이 여기 있다.
극우의 득세는 다른 존재, 낯선 존재를 공포와 위협의 대상으로 낙인찍는 태도와 관련된다. 극우는 전략적으로 외국인 혐오와 인종주의의 충동을 자극하여 국가 미국 금리 구성원을 갈라치기 한다. 이게 내전의 논리다. 그들은 일부 집단이 자신들의 상황이나 기대 이익을 위협한다고 믿는 다른 인구 집단에 대해 지니는 증오를 부추긴다.
국민을 서로 대립하게 만들고, 분리하고, 화해 불가능한 정체성을 지니는 공동체로 이렇게 쪼갠다. "첫째, 일반화된 인구 감시를 통해 위험한 소수를 가려내고 고립시킴으로써 내 편과 신한은행직장인 적을 구분한다. 둘째, 합법적인 혹은 합법화 단계의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위험한 소수를 분쇄한다. 셋째, 이념적, 법적 수단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국민 일반이 전쟁의 목표를 따르도록 만든다." (피에르 다르도 외, <내전, 대중혐오, 법치>)
'우리'와 다른 존재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아파트 담보대출 서류
▲ 영화 <슈퍼맨>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이와 관련해 영화 <슈퍼맨>과 일본 드라마 <핫스팟: 우주인 출몰 주의!)>는 눈길을 끈다. 두 작품은 우리와 다른, 혹은 다르다고 믿는 낯선 존재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는 흥미로운 실마리를 제공한다. 여러 번 영화로 만들어진 '슈퍼맨' 시리즈를 새롭게 시작하는 제임스 건 감독의 <슈퍼맨>은 각색의 신선함이 돋보인다. 코믹스 영화에서 다루는 초인적 존재들, 이 영화에서는 메타휴먼이 보여주는 능력은 기존 영화가 이미 보여줬다. <슈퍼맨>의 독특한 점은 인간보다 월등한 존재이면서도 인간으로 성장한 특이한 존재, 인간인 듯하면서도 인간이 아닌 존재를 슈퍼맨의 정체성으로 다시 부각했다는 사실이다.
악당 렉스 루터(그는 생물학적 인간이다. 이게 중요하다)가 차별의 근거로 삼는 질문, 슈퍼맨(데이비드 코렌스웨트)이 어떤 존재인가를 묻는 것이 영화의 포인트다. 렉스 루터(니콜라스 홀트)가 보기에 슈퍼맨은 '인간(man)'이 아니라 '그것(it)'이다. 렉스 루터가 보기에 슈퍼맨은 인간이 아니면서도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존재이기에 시기, 질투하고 제거하려 든다.
생물학적 부모가 남긴 일종의 유언을 믿고 슈퍼맨은 인류를 사랑하고 구하려고 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듯이 인류는 대체로 어리석다. 대중매체의 선전·선동에 쉽게 넘어간다. 렉스 루터는 자신의 악행에 방해물인 슈퍼맨을 제거하려고 언론을 이용하여 슈퍼맨이 사실은 인간이 아니라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류를 제거하려는 음모를 가진 외계인이라고 선동한다. 슈퍼맨의 모호한 정체성이 문제가 된다.
그는 생물학적으로는 외계인이지만, 그를 사랑하는 인간 부모에 의해 인간으로 성장했다. 슈퍼맨과 인간 부모의 관계를 보여주는 몇 장면이 그래서 인상적이다. 인류의 영웅이었던 슈퍼맨은 대중매체의 허위 선전으로 졸지에 인류의 적이 된다. <슈퍼맨>의 미덕은 외계인, 하지만 인간으로 길러진 슈퍼맨을 인류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문제를 무겁지 않으면서도 예리하게 제기한다는 데 있다. 더 쉽게 물어보면 '우리'와 다른 존재(alien)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설득력 있게 표현한다.
영화에서 슈퍼맨은 초인적 능력을 지닌 존재로 그려지지 않는다. 영화의 초반부에 나오는 슈퍼맨의 패배와 추락, 슈퍼맨을 동정하고 도우려는 다른 인간 이민자의 모습은 국가 구성원으로 누가 포함되고 배제되느냐는 문제,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를 차별하는 폭력적인 프레임을 상기시킨다. 슈퍼맨은 제임스 건 감독이 밝혔듯이 현재 논란이 되는 문제, 차별받고 추방당하는 트럼프 시대 이민자를 상징한다.
인류는 초인간적인 완벽한 존재로서 슈퍼맨을 동경하고 필요로 하지만, 그런 존재를 두려워하고 의심한다. 미국이 대표적인 사례이지만, 한 국가는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이민자를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럴 때 인류와 슈퍼맨 같은 메타휴먼, 국민과 비국민, 토박이와 이민자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영화는 이런 질문을 깊이 파고들지는 않지만, 적어도 질문은 제기한다.
외계인임을 밝혀도 놀라지 않는 사람들
▲ 넷플릭스에서 방영하는 일본 드라마 <핫스팟: 우주인 출몰 주의!> 자료 사진
ⓒ 넷플릭스
넷플릭스에서 본 드라마 <핫스팟>은 <슈퍼맨>과는 다르면서도 통하는 울림을 전한다. 여기 등장하는 외계인 다카하시(가쿠타 아키히로)는 아버지는 외계인, 어머니는 인류인 혼혈이다. 그는 동네 아저씨 같은 인물이다. 통상적으로 외계인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기괴한 모습을 지닌 괴생명체가 지구를 침공하거나, 슈퍼맨처럼 초능력을 발휘해 지구를 지키는 영웅 서사를 따르며, 외계인은 괴물이거나 영웅으로 등장한다.
<핫스팟>은 그와는 다른 외계인을 보여준다. 드라마는 일본 후지산 아래 동네 호텔에서 일하는 싱글맘 키요미(이치가와 미카코)가 직장 동료 다카하시가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여러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50대 남성 다카하시는 전형적인 소시민의 생활과 생각을 보여준다. 그는 직장에서는 하기 싫은 일을 슬쩍 미루면서 이기적인 면모도 드러내고, 사소한 일로 좋아하기도 하고 삐진다. 어떨 때는 이기적으로 보이면서도 동료와 친구가 어려움에 부닥칠 때는 주저 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다카하시의 인간적인 면모는 별로 특별하지 않은 외계인의 능력을 발휘할 때마다 고열, 가려움 등 웃음을 자아내는 인간적인 후유증에 시달린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다카하시는 영웅적인 행동과는 관계가 없어 보이는 자잘한 일상사, 예컨대 체육관 천장에 박힌 배구공을 빼내고, 호텔방에서 도둑맞은 텔레비전을 냄새로 찾아내고, 호텔에 묵었던 수험생이 대입시험날 방에 두고 간 수험표를 놀라운 속도로 달려가 돌려주는 행동으로 (초)능력을 입증한다. 초능력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서 더 인간적인 모습이다.
<핫스팟>의 매력은 외계인 다카하시를 대하는 키요미와 친구들의 태도에서 나온다. 동네 아저씨 같은 중년 외계인에게 이런저런 사소한 사건을 해결해달라 부탁하면서 이들은 다카하시를 자연스럽게 수다를 나눌 수 있는 친구로 받아들인다. 다카하시가 외계인이라는 걸 밝힌 뒤에도 별로 놀라지도 않고 호들갑스러운 반응을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 덤덤한 반응에 오히려 다카하시가 놀란다.
키요미와 친구들은 "외계인이면 외국인 비슷한 거 아냐? 요새 우리 마을에 외국인들 많아졌잖아"라고 다카하시가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여기에는 한국처럼 외국 이주민이 점점 늘고 있는 일본의 인구학적 변화도 배경으로 작용할 것이다) 외계인이든 외국인이든 그냥 "우리 마을"에 같이 사는 동네 사람들이라는 태도가 돋보인다. 다카하시는 키요미의 친구들과 그렇게 느슨하게 엮이며 도움을 주고받는 이웃이 된다. 우리가 많이 잃어버린 모습이다.
나는 여기서 다름에 대한 이해, 낯선 존재와의 공존을 부드럽지만 뭉클하게 표현하는 드라마의 미덕을 확인한다. 이런 친구들이 있기에 다카하시가 걱정하는 것처럼 외계인이라는 것이 밝혀져도 매스컴이 달라붙거나(그럴 수 있었던 위기를 다룬 에피소드도 나오지만), 정부 기관에 잡혀가는 험한 일을 겪지 않는다.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다카하시가 사는 동네, 티격태격 다투면서도 표나지 않는 다정함과 배려심이 느껴지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런 곳이 늘어날수록 낯선 존재를 배제하고 억압하려는 극우의 준동도 누를 수 있다. 사람을 움직이는 건 결국 차가운 이성이 아니라 서서히 스며들어 감화시키는 친절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확인하는 극우의 세계적 확산은 기본적으로 자기와 다른 존재(성, 인종, 계급, 나이 등)에 대한 억압과 배제에 뿌리를 둔다. 왜 그렇게 된 걸까? 그것이 단지 악의나 편견의 문제일까? 거기에는 인류학적·진화론적 기원을 가진 생존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인류는 수십만 년 동안 혈연 중심의 수렵 채집 공동체 안에 살면서 집단 구성원은 신뢰할 수 있지만, 무리 밖 집단은 자원 경쟁, 질병 전파, 폭력의 위험을 불러올 수 있는 잠재적 위협으로 여겼다. 그렇다면 어떻게 안과 밖의 집단을 나누는가? 생존의 도구로서 편향된 인식이 작동한다. 생물학적, 문화적, 종교적으로 낯선 외모, 말, 행동 방식 등을 지닌 이방인(alien)에게 두려움이나 경계심을 느끼는 남양주별내지구분양가 경향은 진화 과정에서 생존 가능성을 높여준 심리적 반응이었다. 이런 본능적 반응이 편견, 차별, 배제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현대 사회는 다문화, 다인종, 성 다양성 등 복잡하고 유동적인 구조로 변화했다. 하지만 인류는 과거 생존 환경에 맞춰진 채 진화 속도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 결과 비이성적인 혐오, 배제, 농협대학정시등급 차별이 나타난다. 진화론적으로 내재화된 비이성적인 배제의 본능에 사로잡혀 살 것인가? 그것을 넘어선 감성적 공감과 이성적 이해로 나아갈 것인가? 문명과 야만을 나누는 기준이 여기 있다.
극우의 득세는 다른 존재, 낯선 존재를 공포와 위협의 대상으로 낙인찍는 태도와 관련된다. 극우는 전략적으로 외국인 혐오와 인종주의의 충동을 자극하여 국가 미국 금리 구성원을 갈라치기 한다. 이게 내전의 논리다. 그들은 일부 집단이 자신들의 상황이나 기대 이익을 위협한다고 믿는 다른 인구 집단에 대해 지니는 증오를 부추긴다.
국민을 서로 대립하게 만들고, 분리하고, 화해 불가능한 정체성을 지니는 공동체로 이렇게 쪼갠다. "첫째, 일반화된 인구 감시를 통해 위험한 소수를 가려내고 고립시킴으로써 내 편과 신한은행직장인 적을 구분한다. 둘째, 합법적인 혹은 합법화 단계의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위험한 소수를 분쇄한다. 셋째, 이념적, 법적 수단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국민 일반이 전쟁의 목표를 따르도록 만든다." (피에르 다르도 외, <내전, 대중혐오, 법치>)
'우리'와 다른 존재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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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이와 관련해 영화 <슈퍼맨>과 일본 드라마 <핫스팟: 우주인 출몰 주의!)>는 눈길을 끈다. 두 작품은 우리와 다른, 혹은 다르다고 믿는 낯선 존재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는 흥미로운 실마리를 제공한다. 여러 번 영화로 만들어진 '슈퍼맨' 시리즈를 새롭게 시작하는 제임스 건 감독의 <슈퍼맨>은 각색의 신선함이 돋보인다. 코믹스 영화에서 다루는 초인적 존재들, 이 영화에서는 메타휴먼이 보여주는 능력은 기존 영화가 이미 보여줬다. <슈퍼맨>의 독특한 점은 인간보다 월등한 존재이면서도 인간으로 성장한 특이한 존재, 인간인 듯하면서도 인간이 아닌 존재를 슈퍼맨의 정체성으로 다시 부각했다는 사실이다.
악당 렉스 루터(그는 생물학적 인간이다. 이게 중요하다)가 차별의 근거로 삼는 질문, 슈퍼맨(데이비드 코렌스웨트)이 어떤 존재인가를 묻는 것이 영화의 포인트다. 렉스 루터(니콜라스 홀트)가 보기에 슈퍼맨은 '인간(man)'이 아니라 '그것(it)'이다. 렉스 루터가 보기에 슈퍼맨은 인간이 아니면서도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존재이기에 시기, 질투하고 제거하려 든다.
생물학적 부모가 남긴 일종의 유언을 믿고 슈퍼맨은 인류를 사랑하고 구하려고 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듯이 인류는 대체로 어리석다. 대중매체의 선전·선동에 쉽게 넘어간다. 렉스 루터는 자신의 악행에 방해물인 슈퍼맨을 제거하려고 언론을 이용하여 슈퍼맨이 사실은 인간이 아니라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류를 제거하려는 음모를 가진 외계인이라고 선동한다. 슈퍼맨의 모호한 정체성이 문제가 된다.
그는 생물학적으로는 외계인이지만, 그를 사랑하는 인간 부모에 의해 인간으로 성장했다. 슈퍼맨과 인간 부모의 관계를 보여주는 몇 장면이 그래서 인상적이다. 인류의 영웅이었던 슈퍼맨은 대중매체의 허위 선전으로 졸지에 인류의 적이 된다. <슈퍼맨>의 미덕은 외계인, 하지만 인간으로 길러진 슈퍼맨을 인류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문제를 무겁지 않으면서도 예리하게 제기한다는 데 있다. 더 쉽게 물어보면 '우리'와 다른 존재(alien)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설득력 있게 표현한다.
영화에서 슈퍼맨은 초인적 능력을 지닌 존재로 그려지지 않는다. 영화의 초반부에 나오는 슈퍼맨의 패배와 추락, 슈퍼맨을 동정하고 도우려는 다른 인간 이민자의 모습은 국가 구성원으로 누가 포함되고 배제되느냐는 문제,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를 차별하는 폭력적인 프레임을 상기시킨다. 슈퍼맨은 제임스 건 감독이 밝혔듯이 현재 논란이 되는 문제, 차별받고 추방당하는 트럼프 시대 이민자를 상징한다.
인류는 초인간적인 완벽한 존재로서 슈퍼맨을 동경하고 필요로 하지만, 그런 존재를 두려워하고 의심한다. 미국이 대표적인 사례이지만, 한 국가는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이민자를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럴 때 인류와 슈퍼맨 같은 메타휴먼, 국민과 비국민, 토박이와 이민자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영화는 이런 질문을 깊이 파고들지는 않지만, 적어도 질문은 제기한다.
외계인임을 밝혀도 놀라지 않는 사람들
▲ 넷플릭스에서 방영하는 일본 드라마 <핫스팟: 우주인 출몰 주의!> 자료 사진
ⓒ 넷플릭스
넷플릭스에서 본 드라마 <핫스팟>은 <슈퍼맨>과는 다르면서도 통하는 울림을 전한다. 여기 등장하는 외계인 다카하시(가쿠타 아키히로)는 아버지는 외계인, 어머니는 인류인 혼혈이다. 그는 동네 아저씨 같은 인물이다. 통상적으로 외계인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기괴한 모습을 지닌 괴생명체가 지구를 침공하거나, 슈퍼맨처럼 초능력을 발휘해 지구를 지키는 영웅 서사를 따르며, 외계인은 괴물이거나 영웅으로 등장한다.
<핫스팟>은 그와는 다른 외계인을 보여준다. 드라마는 일본 후지산 아래 동네 호텔에서 일하는 싱글맘 키요미(이치가와 미카코)가 직장 동료 다카하시가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여러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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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요미와 친구들은 "외계인이면 외국인 비슷한 거 아냐? 요새 우리 마을에 외국인들 많아졌잖아"라고 다카하시가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여기에는 한국처럼 외국 이주민이 점점 늘고 있는 일본의 인구학적 변화도 배경으로 작용할 것이다) 외계인이든 외국인이든 그냥 "우리 마을"에 같이 사는 동네 사람들이라는 태도가 돋보인다. 다카하시는 키요미의 친구들과 그렇게 느슨하게 엮이며 도움을 주고받는 이웃이 된다. 우리가 많이 잃어버린 모습이다.
나는 여기서 다름에 대한 이해, 낯선 존재와의 공존을 부드럽지만 뭉클하게 표현하는 드라마의 미덕을 확인한다. 이런 친구들이 있기에 다카하시가 걱정하는 것처럼 외계인이라는 것이 밝혀져도 매스컴이 달라붙거나(그럴 수 있었던 위기를 다룬 에피소드도 나오지만), 정부 기관에 잡혀가는 험한 일을 겪지 않는다.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다카하시가 사는 동네, 티격태격 다투면서도 표나지 않는 다정함과 배려심이 느껴지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런 곳이 늘어날수록 낯선 존재를 배제하고 억압하려는 극우의 준동도 누를 수 있다. 사람을 움직이는 건 결국 차가운 이성이 아니라 서서히 스며들어 감화시키는 친절한 마음이기 때문이다.